면접 조사에 참여한 코다들은 모두 11명이었다. 면접 참여 코다(이하 면접참여자)들은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 1969년생, 나이가 어린 사람이 2005년생으로 1969~2005년 사이에 출생한 사람들로, 이들의 농인 부모(이하 농부모)는 1939~1977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들이었다.
농부모들은 그 연령대가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어린 시절 가족 안에서 의사소통의 부재와 소외를 경험했다. 한 사례를 제외하고 면접참여자들의 농부모는 모두 청인부모에게서 태어났으며, 형제자매와 조부모 등 가족 대부분이 청인으로서 수어를 알지 못했다. 많은 농아동에게 농학교가 최초로 의미 있는 의사소통을 경험하게 되는 장이자 인간관계와 자아 정체성 형성의 핵심적인 장소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농부모 중에는 그나마 농학교 입학마저 하지 못한 경우도 다수 존재했는데, 이런 아동기 시절 의사소통 및 사회적 경험의 부재 혹은 부적절함은 그들의 일생 삶의 조건은 물론 코다 삶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면접참여자들은 원가족 안에서 농인 부모의 지속적 소외와 고립을 자연스럽게 목격했다고 진술한다. 특히 가족의 행사나 장례, 재산분할 등의 과정에서 농부모가 심각하게 고립되는 상황을 일상적으로 목격한 한 참여자는 이 같은 소외에 대해 자신이 서운함, 소외감 등을 대신 느껴야 했으며, 농부모를 대신해 농부모를 가족 구성원으로서 동등하게 대우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고 한다.
여성학·장애학 연구자 황지성씨(43)는 올해 11명의 성인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를 만났다. 코다는 농인 부모의 자녀를 일컫는 말로, 황씨 또한 농인 아버지를 둔 코다 당사자다. “청각장애인들은 역사 속에 계속 있어 왔고, 그 자녀들도 그럴 테죠. 하지만 코다라는 이름과 정체성은 최근에야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황씨가 말했다.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코다’가 차츰 알려졌지만 황씨는 미디어가 개별적인 사례를 소개하는 것에 그친다는 아쉬움을 느꼈다. 한국사회에서 농인의 자녀로서 코다들이 겪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짚어보자는 문제의식으로 황씨와 비영리단체 코다코리아(대표 이길보라)는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1930~1970년대생 농인 부모를 둔 1960~2000년대생 성인 코다 11명이 집단·심층 면접에 참여했다. 언어나 문화 등으로 이중고를 겪는 이주노동자·결혼이민 농인 부모를 둔 코다도 2명 포함됐다. 코다코리아는 12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그 결과발표회를 열었다.
경향신문은 발표회 전날 서울 성북구 한 카페에서 연구책임자인 황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대화 내내 코다는 단일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비장애인이면서도 농문화의 일원인 복합적인 ‘사이’의 존재들. 계급, 장애 (중복) 정도, 젠더, 교육 정도, 인종, 세대 등이 제각기 다른 코다들과 대화를 나누며 황씨는 확신을 얻었다고 했다. “각각이 다르면서도 음성언어 중심의 사회에서 코다와 농부모들이 겪는 문제에는 유사점이 있었어요.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가 우리 사회에 공고히 버티고 있다는 뜻이겠죠.”
코다의 부모는 누구인가
11일 서울 성북구 한 카페에서 황지성 연구자(43)가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전지현 기자
황씨는 11명의 코다들에게서 그들의 부모 22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농부모들은 나이대가 다양했지만 직업이 비슷했다. ‘미싱, 목공, 청소노동, 건설일용노동, 식모, 세신사, 방문판매’ 등 저임금 육체노동직에 종사한 이들이 대다수였다. 이례적으로 대학에 들어가 외국 유학까지 한 50대 농인 여성만이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할당하는 기업에 취직해 사무직 일을 하고 있었다.
여성학·장애학 연구자 황지성씨(43)는 올해 11명의 성인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를 만났다. 코다는 농인 부모의 자녀를 일컫는 말로, 황씨 또한 농인 아버지를 둔 코다 당사자다. “청각장애인들은 역사 속에 계속 있어왔고, 그 자녀들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코다라는 이름과 정체성은 최근에야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황씨가 말했다.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코다’가 차츰 알려졌지만 황씨는 미디어가 개별적인 사례를 소개하는 것에 그친다는 아쉬움을 느꼈다. 한국 사회에서 농인의 자녀로서 코다들이 겪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짚어보자는 문제의식으로 황씨와 비영리단체 코다코리아(대표 이길보라)는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1930~1970년대생 농인 부모를 둔 1960~2000년대생 성인 코다 11명이 집단·심층 면접에 참여했다. 언어나 문화 등으로 이중고를 겪는 이주노동자·결혼이민 농인 부모를 둔 코다도 2명 포함됐다. 코다코리아는 12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그 결과발표회를 열었다.
코다코리아(대표 이길보라)가 농인의 자녀인 코다에 대한 실태를 담은 연구조사 결과발표회를 개최한다. 코다 실태조사 결과보고회는 2023년 9월 12일 노무현시민센터 1층 다모여 강의실에서 진행된다.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는 농인의 자녀를 일컫는 용어다. 코다코리아는 고요와 소리의 세계를 잇는 한국 코다의 모임으로, 코다의 고유한 유산과 다문화 정체성을 축복하며 코다를 연결함으로써 가능성을 확장하는 비영리 스타트업이다.
코다 실태조사는 한국 사회에 코다가 거의 인식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코다의 정의, 정체성과 범주, 그들이 처한 현실, 코다의 존재와 목소리가 어떤 사회 변화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실시한 실태조사다. 코다는 장애인, 아동청소년, 돌봄 등 관련 제도나 법, 정책은 물론이고 사회운동과 학계 등에서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농인/장애인의 자녀이면서 ‘장애인’ 당사자는 아니며, 장애가 있는 가족 구성원에게 주되게 돌봄을 제공하는 위치지만 온전히 ‘돌봄제공자'라고는 할 수 없는, 모호함으로 가득한 범주인 코다에 대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이번 실태조사가 진행됐다.
코다코리아(대표 이길보라)와 코다인터내셔널이 주최한 ‘2023 코다국제컨퍼런스’가 지난 6월 29일부터 7월 2일까지 전 세계 22개국 151면의 코다들이 참가한 가운데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코다국제컨퍼런스는 미국의 비영리 단체인 코다인터내셔널이 매년 주최하는 컨퍼런스로 농인의 자녀인 코다들이 모여 코다 정체성과 문화적 유산을 축하하고, 사회적 차별 해소를 탐구하는 등 코다 인권 증진을 도모하는 행사이며, 아시아에서는 한국에서 최초로 개최했다.
이번 코다국제컨퍼런스는 △코다, 농인, 수어와 관련된 강연 △코다 정체성을 논의하는 워크숍 △교류 모임 △장학금 모금 경매 △레크리에이션 △한국 농사회 탐방 등으로 이루어졌다.
‘다채로운 코다 Colorful CODA’는 2023 코다국제컨퍼런스의 주제로, 코다라는 공통점 안에서도 인종, 민족/국적,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 장애 등에 따라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게 되는 코다들을 의미한다. 또한 여러 국가의 코다들이 모여 다채로운 코다의 문화, 코다가 지니고 있는 수어와 농문화까지 모두 모여 아름다운 물결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코다코리아 이길보라 대표는 “전 세계에서 모인 코다들의 경험과 언어, 문화 및 생활 양식이 이토록 비슷할 수 있다는 점에 다시 한번 놀랐다."고 말하며 유색 인종이 처음으로 개막 기조연설을 하고 아시아인 코다 좌담회가 최초로 열렸던 의미 있었던 컨퍼런스였다고 밝혔다.
한편 코다코리아는 컨퍼런스 종료 이후에도 코다의 존재와 정체성을 알리는 강연, 인식개선 교육, 코다 모임, 코다 캠프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국내 코다 커뮤니티를 지속 및 확장하며 코다와 농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 행사는 주한미국대사관⋅한국관광공사⋅인천관광공사⋅브라이언 임팩트⋅아름다운 가게 등의 후원으로 진행됐다.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장애인권리예산 투쟁 1년: 지하철행동과 시민과 언론의 역할’ 좌담회에 참여한 발제자와 패널들이 관객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복건우
장애인들이 휠체어에서 내려와 바닥을 기어 열차에 오른다. 출근길 시민들은 불편을 호소한다. 앞서 수십 년간 장애인들은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권리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소수자와 약자, 몫이 없는 이들의 목소리에 응답하지 않는 시대, 시민사회와 언론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할까.
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가 공동 주관한 ‘장애인권리예산 투쟁 1년: 지하철행동과 시민과 언론의 역할’ 좌담회가 14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렸다. 이번 좌담회에서는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지하철행동의 의미와 전망’에 대해 발제를 하고, 안영춘 한겨레신문 기자가 ‘지하철행동 보도 행태에 나타난 저널리즘의 한계와 역할’에 대해 발표했다. 이어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을 좌장으로 이길보라 영화감독,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김재왕 서울대 공익법률센터 변호사, 나경희 시사IN 기자가 문화예술계·학계·법조계·언론계 토론 패널로 참석해 이야기를 나눴다.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장애인권리예산 투쟁 1년: 지하철행동과 시민과 언론의 역할’ 좌담회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지하철행동의 의미와 전망’을 주제로 발제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위한 투쟁”
지하철에서 장애인들은 속수무책으로 다치고 죽어 나갔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역사에서 리프트를 타다 떨어졌고, 리프트 버튼을 누르려다 계단 아래로 추락했다. 어떤 리프트인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2001년 오이도역 참사는 수직형 리프트, 2002년 발산역 참사는 경사형 리프트였다. 장애인들은 지하철 리프트를 ‘살인 기계’라고 불렀다. 이 살인 기계를 없애고 이동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2021년 12월 3일, 출근길 지하철이 멈춰 서자 세상은 뒤늦게 장애인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자그마치 20년이 넘는 세월을 견디며 ‘살아남은’ 결과다.
출근길에 지하철을 멈춰 세우는 승하차 시위, 승강장에서 장애인 권리를 알리는 선전전을 합쳐 전장연은 ‘지하철행동’이라고 부른다. 이날 발제를 맡은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20년 넘게 이어져 온 투쟁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위한 투쟁이었습니다. 차별받던 사람이 저항하는 사람으로 변화하는 투쟁이었습니다. 혐오와 욕설이 쏟아지고 있지만, 장애인의 권리는 정치가 예산을 통해 책임져야 하는 문제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선은 확대되었다. ‘이동권 투쟁’은 모든 권리 투쟁의 시작이었다. 이동할 수 있어야 교육받고 노동하며 지역사회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중증장애인은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기 위한 활동지원서비스 제도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2006년 4월 27일, 6시간 동안 한강대교를 맨몸으로 기어가는 투쟁을 벌였다. 처절한 싸움 끝에 활동지원서비스는 법에 명시된 ‘권리’가 되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예산을 바라보는 정부 부처의 태도다. 장애인 권리는 그동안 ‘불필요한 비용’ 정도로 여겨져 왔다. 박 대표는 과거 독일 나치가 장애인 학살을 자행한 ‘T4 프로그램’에 빗대어 이를 설명했다.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장애인, 노인, 아동에게 필요한 예산을 다 들어줬다가는 ‘나라가 망한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싸울 힘이 없다면 살 권리도 없다.’ 장애인 30만 명을 생체 실험한 가스로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한 히틀러의 말입니다. 중증장애인에게 들어가는 활동지원 예산이 과도하니 이들을 시설에 보내야 한다는 기획재정부의 논리가 T4 프로그램과 무엇이 다릅니까. 우리는 기획재정부를 ‘한국판 T4 본부’라고 부릅니다.”
박 대표는 지하철행동이 비장애인 중심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47번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 177명의 삭발 투쟁, 325번의 출근길 선전전(4월 17일 기준)을 통해 전장연은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 바라보는 변화의 길을 열었다. “우리를 배제하는 출근길은 비장애인만을 위한 길이었습니다. 노동력을 실어나르는 컨베이어벨트 같은 출근길 지하철에 우리가 기어들어가니 세상은 놀랐습니다. 이제까지 장애인이 어떻게 살고 죽었는지, 우리의 역사는 서서히 잊혀져 갔습니다. 그러나 매일 아침 단 한 명이라도 장애인이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함께 살아가기 위한 권리예산을 승강장에서 외칠 힘이 있다면, 우리의 투쟁은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 사실 왜곡, 악의적 프레이밍, 클리셰 끼워넣기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안영춘 한겨레신문 기자는 ‘언론은 왜 달을 보지 않는가’라는 제목으로 지하철행동 보도 행태에서 나타난 저널리즘의 한계와 역할을 짚었다.
과거 어느 때보다 장애 이슈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뜨거웠다. 전장연이 빅카인즈와 자체 데이터를 활용해 뉴스 키워드를 분석한 결과, 2021년 12월 3일부터 2023년 3월 26일까지 언론에 보도된 지하철행동 기사는 총 6,032건이었다. 전장연이 출근길에 지하철을 타면, 정치권 전체에서 반응이 쏟아졌다. 2022년 3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페이스북에 “서울 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라는 글을 올려 전장연을 공격했다. 2023년 1월 오세훈 서울시장은 ‘무관용 원칙’을 내세워 전장연이 시위 중인 역사를 무정차 통과했다. 정치권이 반응할 때마다 기사량은 가파르게 증가했다. 이러한 지하철행동의 ‘화제성’에 언론은 주목했다.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장애인권리예산 투쟁 1년: 지하철행동과 시민과 언론의 역할’ 좌담회에서 안영춘 한겨레신문 기자가 ‘언론은 왜 ‘달’을 보지 않는가’라는 주제로 발제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단순 보도량은 물론, ‘맥락적 보도’도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다. 전장연이 왜 투쟁하는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는 왜곡된 보도는 없는지 살펴보는 식이다. 안 기자는 지하철행동의 화제성이 이러한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면서도, 맥락이 빠진 보도가 도드라져 보이는 미디어 환경을 경계했다. “화제만을 좇는 탈(脫)맥락적 보도가 일정량을 넘어 역치를 돌파하면 해당 이슈는 레드오션이 됩니다. 차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블루오션, 즉 맥락적 보도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같은 미디어 안에서도 탈맥락적 보도와 맥락적 보도 사이를 맥락 없이 오락가락하는 행태를 보이는 것입니다.”
안 기자는 세 가지 측면에서 언론 보도 행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첫째, 사실을 교묘히 짜깁기해 서사를 재구성하는 왜곡 보도. 둘째, 사실을 취사선택하거나 제목을 통해 독자를 자극하는 악의적 프레이밍. 셋째, ‘시민 불편’을 강조하며 혐오를 조장하는 극단적 클리셰. ‘바퀴를 일부러 승강장 틈에 끼워 넣었다’, ‘할머니 임종을 가야 하는 사람에게 버스 타고 가라고 했다’ 같은 보도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보도가 한 번 진실로 둔갑하고 나면 끝없이 재인용되고, 이를 바로잡으려면 설명이 길어지는 탓에 왜곡하기보다 훨씬 큰 노력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두 보도는 서울교통공사가 발표한 왜곡된 보도자료를 확인 과정 없이 베껴 썼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저널리즘이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한 겁니다.”
그렇다면 언론의 자유를 누릴 자격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안 기자는 그 자격이 ‘사회적 약자’가 아닌 ‘언론’ 자신에게 있다고 봤다. 입법, 행정, 사법에 이어 ‘제4의 권력’이라고 불리는 언론이 기득권을 비판하기보다는 오히려 카르텔의 일원이 되어 사회적 약자를 외면하고 강자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것이다.
“주류 미디어는 애초부터 강자의 일원이니 그들에게 ‘약자의 목소리를 전달해 주십시오’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가 곧 저널리즘적 약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여기에 있습니다. 장애인운동과 저널리즘이 존재론적으로 불화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또한, 주류 미디어 종사자 대다수는 엘리트 계급에 속해 중간계급의 이익을 보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보적이라고 불리는 일부 언론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안 기자의 말이다.
우리나라 언론이 받아든 신뢰도 성적표는 처참한 수준이다.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언론 신뢰도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2017년부터 2020년까지 4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했다. 2021년에는 46개국 중 40위에 그쳤다. ‘기레기(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를 넘어 ‘기더기(기자와 구더기의 합성어)’가 기자라는 직업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언론은 불신받는 집단으로 전락했다.
안 기자는 기성 언론이 그 효력을 다해가고 있다며, 기존 저널리즘 문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기자들을 장애계가 적극적으로 조직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또 기성 언론을 견인하는 비마이너와 같은 당사자 독립언론의 역할에 주목했다. “기성 언론은 모든 투쟁을 결과 위주로 바라보고 보도합니다. 기성 언론을 낙후시킬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비마이너는 기성 언론 기자들이 지하철행동과 전장연과 관련된 사안을 보도하기에 앞서 서울시나 서울교통공사의 보도자료를 검증하기 위해 참조하는 언론이 됐습니다. 비마이너 같은 매체가 확실한 위상을 가져야 합니다.”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장애인권리예산 투쟁 1년: 지하철행동과 시민과 언론의 역할’ 좌담회에서 이길보라 영화감독(왼쪽부터),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김재왕 서울대 공익법률센터 변호사가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 “청각장애인, 지하철행동 접할 기회 없다”
발제가 끝나고 난 뒤 패널 네 명의 토론이 펼쳐졌다. 이길보라 감독은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 자녀) 정체성을 기반으로 지하철행동이 청각장애인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설명했다. “청각장애인은 이 투쟁을 자신의 언어인 수화언어, 문자언어로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몇몇 정치인이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 이 사안을 악용하고, 언론은 탈맥락적 보도를 하고, 시민들은 단편적으로 사건을 이해하는 상황에서 투쟁의 당사자이자 권리 주체가 되어야 할 청각장애인은 이 운동이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한 것이라는 맥락을 잃어버립니다.”
예를 들어 2022년 4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출연한 JTBC ‘썰전’ 유튜브 영상에는 수어·문자통역이 제공되지 않았다. 비마이너는 당시 통역이 제공되지 않은 방송 환경을 지적하며 농인의 정보접근권과 언어권 보장을 위해 녹취록 전문을 기사로 공개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에게는 가닿을 수 없었다고 이길보라 감독은 지적했다. “한국농아인협회가 제작하는 ‘한국농아방송’에는 전장연 투쟁과 관련한 콘텐츠가 전무합니다. 문자언어를 제대로 읽을 수 없는 수어 사용자가 농인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접근하는 채널조차 장애인권리예산을 제대로 보도하거나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안을 정확하게 보지 못하게 함과 동시에 누구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강화하지 못한 언론의 책임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어 이길보라 감독은 제작 중인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의 몸(Our Bodies)’에 나오는 일본의 ‘우생보호법’ 투쟁이 한국의 상황과 연결된다며, 지하철행동을 새로운 시각으로 읽어내는 예술적 시도를 강조했다. “인구 증가를 막겠다며 8만 명 넘게 강제 임신중절·불임수술을 받도록 한 일본의 우생보호법은 곧 장애인을 향한 차별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지금 여기, 한국 사회에도 낯설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전장연의 투쟁이 단순하게 ‘휠체어 탄 장애인들이 지하철 타고 싶대’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비장애인 중심 사회를 공고하게 떠받치고 있는 가치관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임을 예술로 새롭게 감각하게 하는 극영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등의 시도가 필요합니다.”
김승섭 교수는 이동, 낙인, 정치, 합리성이라는 네 가지 키워드로 지하철행동을 설명했다. 시민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기본 조건이 되는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 이동을 막는 물리적 장벽이 사라지더라도 장애인을 향한 혐오와 낙인이 결과적으로 이동을 가로막는 현실의 부당함을 이야기했다. “휠체어 사용자인 제 친구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저상버스를 이용한 적이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저상버스를 타려고 시도한 적이 없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수십 년간 낙인을 감당하며 장애인으로 살아온 그가 저상버스를 두려워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이러한 혐오와 낙인에 대해 정치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김승섭 교수는 한국의 정치가 장애인의 투쟁을 방관한 것이 아니라,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키우기 위해 투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고 봤다. “일각에서는 장애인들이 ‘생떼를 쓴다, 억지를 부린다’라고 주장합니다. 그 투쟁의 내용과 요구 방식이 모두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어떤 이들은 자신이 살아온 고된 역사와 몸 깊숙이 새겨진 상처 말고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공동체가 누적된 차별의 역사를 지우고 피해자이자 생존자인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부과할 때, 당사자는 자신의 삶을 설명할 언어와 기회를 빼앗깁니다. 그러한 조건 위에서 합리성과 억지를 구분하는 ‘합리적인’ 기준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 ‘전략적 봉쇄소송’ 그리고 ‘실패한 취재기’
김재왕 변호사는 서울교통공사가 전장연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전장연이 2021년 12월부터 1년간 75차례 지하철 시위를 벌여 운행 지연 등 피해를 봤다며 전장연에 6억 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김재왕 변호사는 이 소송을 “시민 참여와 비판을 봉쇄하려는 일종의 전략적 봉쇄소송”이라고 규정하면서 “소 제기만으로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장애인권리예산과 같이 정치적 공론장에서 논의되어야 할 주제를 법정 내 손해배상 문제로 왜곡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전략적 봉쇄소송은 보통 민사소송으로 제기된다. 문제는 재판에서 승소하고 손해배상을 받으려는 목적이 아니라, 해당 사안을 둘러싼 정치적 논의를 차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이다. “서울교통공사는 소송 조정 과정에서 지하철행동 중단을 요구했는데, 이는 서울교통공사의 소 제기 목적이 손해배상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전략적 봉쇄소송은 비판자와 반대자에게 공포감을 주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정치 참여 자체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장애인권리예산 투쟁 1년: 지하철행동과 시민과 언론의 역할’ 좌담회에서 나경희 시사IN 기자가 ‘실패한 취재기’라는 주제로 전장연에 관해 쓴 기사들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마지막으로 나경희 기자는 ‘실패한 취재기’라는 주제로 전장연에 관해 쓴 기사들을 소개했다. 1년 365일 중 하루만 취재해서 발행한 기사, 나머지 364일의 싸움을 담지 못한 기사, 현장에 사람이 남아있어도 일정상 떠나야만 했던 기사. 나경희 기자는 그 과정에서 누구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이준석 전 대표, 오세훈 시장의 말은 취재가 쉬워요. 페이스북에 다 올려주시고, 보도자료도 뽑아주시고, 전화도 대신 받아주시니, 귀에 쏙쏙 박히는 말을 따옴표 안에 집어넣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기자는 현장의 정제되지 않은 말, 한참 들어야지 알 수 있는 말을 알기 쉽게 잘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22년 3월 28일 오전 8시, 서울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승강장을 찾은 나경희 기자는 시민들 앞에 무릎을 꿇은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을 마주했다.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않는 정치권을 대표한 사과였다. 이틀 뒤 김예지 의원을 인터뷰하며 ‘일반 명함’을 건넸다. 시각장애가 있는 김예지 의원은 점자가 만져지지 않는 명함에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동안 만난 취재원 중 점자 명함이 필요한 시각장애인이 없었거나, 있더라도 고려하지 못했다는 방증이었다. “인터뷰를 하고 난 뒤 우리가 시민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게 맞나,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는 돌아와서 편집국에 건의했고, 시사IN 명함에는 오톨도톨한 점자가 새겨졌다.
기자가 현장을 떠나는 속도보다 독자가 기사를 떠나는 속도는 어쩌면 더 빠를지 모른다. ‘기승전결’ 없이 사건 발생 단계인 ‘기’만 반복하는 기사가 차고 넘친다. 나경희 기자는 어떻게 하면 독자에게 전장연 투쟁의 역사를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고 했다. “꼭 큰 소리가 나고 사건이 벌어져야 기사를 쓰는 게 아니라, 당장 내일이라도 쓸 수 있다면 어떻게 써야 할지 생각을 많이 해요. 매일 똑같고 지겨운 자기반성일지라도 안 하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요. 언론에 많은 기대를 하지 않게 되더라도, 열심히 쓰겠습니다.”
패널들에게 던진 질문이 돌고 돌아 다시 좌장에게 돌아왔다. 고병권 연구원은 지하철행동의 의미를 이렇게 풀이했다. “출근길에 함께 지하철을 타는 것은 시민들에게 말을 건네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퍼포먼스가 아니라 정말 지하철을 탈 거라고, 시설에서 나올 거라고, 그러니 이 사회 전체의 리듬을 조정하자고 요구하면서 같이 세상을 바꿔보자는 것입니다. 과거 해외 정신장애계에서 탈시설을 외쳤던 반정신의학그룹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나 자신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과 함께 사는 것’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서로 맞춰 나가야 합니다. 국가에 대한 요구와 별개로, 우리 시민에겐 그런 책무가 있습니다.”
매년 2월 3일은 한국수화언어법에서 정한 한국수어의 날이다. 농인과 한국수어 사용자의 한국수어 사용 권리를 신장하고 한국수어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고취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날이다.
코다는 농인의 ‘자녀’이므로 한국수어의 날과 별 상관없이 보일 수 있지만, ‘농인’의 자녀이기에 코다에게도 특별한 날이다.
수어는 코다가 태어나서 첫 번째로 접하는 언어이자, 가장 먼저 만나는 사회인 가정의 주 언어다. 부모님이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이라면 특별히 교육기관에서 수어를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수어와 농문화를 체득하게 된다. 코다는 수어를 제1언어로 하는 농문화를 경험하고 나서 음성언어 중심의 청문화를 경험한다. 개인적으로는 다수의 문화보다 소수의 문화를 먼저 받아들인 것이 세상을 사려 깊고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었다.
어른이 된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은 학교에서 국어·외국어를 배우듯이 수어를 배웠다면 수어를 사용하는 것이 특별한 소수의 경험이 아니라, 보편적인 문화였을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수화언어법」제정에 따라 한국수어는 한국어와 공식적으로 동등한 위상과 자격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 한국어와 한국수어가 동등한 위치에 자리했는지 의문이 든다.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된 후 이제 7년이 지났으나 아직도 수어가 나라별로 다르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거나, 수어를 언어가 아닌 단순한 제스처쯤으로 생각하는 청인들도 많다. 의무교육기관에서 수어를 가르치지 않는데 한국어와 동등하게 위치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 사회의 수어·농교육 현실, 더 나아가 코다교육에 대해 고민하던 중, 지난해 서울시 청년허브의 청년의제별네트워크 지원 사업을 통해 코다코리아와 농인단체인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 수어민들레, 한국농대학생연합회, 한국농아동교육연구소가 함께 농교육의 변화를 꿈꾸는 <아, 파> 네트워크를 결성하여 농교육 변화의 필요성을 알리는 세미나를 여러 차례 진행했고, 모두를 위한 교육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는 <모-두를 위한 교육 : 수어로 교육 받을 권리>라는 공론장을 열었다. 음성언어가 주가 되어 수어로 통역하는 것이 흔한 경우라면, <아, 파> 네트워크의 세미나와 공론장은 수어를 메인으로 삼아 청인들에게 음성 통역을 제공하여 다른 행사와 차별점을 두었다.
공론장에서는 농인, 코다, 청인 할 것 없이 모든 참가자들이 동그랗게 모여 자신이 생각하는 ‘모두를 위한 교육’이 무엇인지, 농교육과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는지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한 참가자는 다양한 언어가 평등하게 존중받아야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모두를 위한 교육이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을 나누었다.
나는 이 의견에 크게 공감했다. 언어가 평등하게 존중받기 위해서는 교육기관에서 수어로·수어를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 수어 교육이 비단 농인과 코다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다문화적인 관점에서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모두를 위한 교육의 방법일 것이다.
세 번째 한국수어의 날을 맞아 한국 사회에 수어가 음성언어의 보조가 아닌 독립적인 언어로서 자리 잡기를 바란다. 한국수어의 날이 농인, 코다에게만 특별한 날이 아니라 청인에게도 자연스럽고 특별한 날이 되었으면 한다.
[특집/한국 코다 실태 보고]코다, 그들은 왜 ‘엄빠의 엄빠’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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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다의 부모들은 누구인가 1:
원가족 안에서 농가족은 ‘왕따’
면접 조사에 참여한 코다들은 모두 11명이었다. 면접 참여 코다(이하 면접참여자)들은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 1969년생, 나이가 어린 사람이 2005년생으로 1969~2005년 사이에 출생한 사람들로, 이들의 농인 부모(이하 농부모)는 1939~1977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들이었다.
농부모들은 그 연령대가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어린 시절 가족 안에서 의사소통의 부재와 소외를 경험했다. 한 사례를 제외하고 면접참여자들의 농부모는 모두 청인부모에게서 태어났으며, 형제자매와 조부모 등 가족 대부분이 청인으로서 수어를 알지 못했다. 많은 농아동에게 농학교가 최초로 의미 있는 의사소통을 경험하게 되는 장이자 인간관계와 자아 정체성 형성의 핵심적인 장소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농부모 중에는 그나마 농학교 입학마저 하지 못한 경우도 다수 존재했는데, 이런 아동기 시절 의사소통 및 사회적 경험의 부재 혹은 부적절함은 그들의 일생 삶의 조건은 물론 코다 삶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면접참여자들은 원가족 안에서 농인 부모의 지속적 소외와 고립을 자연스럽게 목격했다고 진술한다. 특히 가족의 행사나 장례, 재산분할 등의 과정에서 농부모가 심각하게 고립되는 상황을 일상적으로 목격한 한 참여자는 이 같은 소외에 대해 자신이 서운함, 소외감 등을 대신 느껴야 했으며, 농부모를 대신해 농부모를 가족 구성원으로서 동등하게 대우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고 한다.
(중략)
고요와 소리 사이…‘영케어러’이자 ‘중간자’인 코다를 읽다
여성학·장애학 연구자 황지성씨(43)는 올해 11명의 성인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를 만났다. 코다는 농인 부모의 자녀를 일컫는 말로, 황씨 또한 농인 아버지를 둔 코다 당사자다. “청각장애인들은 역사 속에 계속 있어 왔고, 그 자녀들도 그럴 테죠. 하지만 코다라는 이름과 정체성은 최근에야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황씨가 말했다.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코다’가 차츰 알려졌지만 황씨는 미디어가 개별적인 사례를 소개하는 것에 그친다는 아쉬움을 느꼈다. 한국사회에서 농인의 자녀로서 코다들이 겪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짚어보자는 문제의식으로 황씨와 비영리단체 코다코리아(대표 이길보라)는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1930~1970년대생 농인 부모를 둔 1960~2000년대생 성인 코다 11명이 집단·심층 면접에 참여했다. 언어나 문화 등으로 이중고를 겪는 이주노동자·결혼이민 농인 부모를 둔 코다도 2명 포함됐다. 코다코리아는 12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그 결과발표회를 열었다.
경향신문은 발표회 전날 서울 성북구 한 카페에서 연구책임자인 황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대화 내내 코다는 단일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비장애인이면서도 농문화의 일원인 복합적인 ‘사이’의 존재들. 계급, 장애 (중복) 정도, 젠더, 교육 정도, 인종, 세대 등이 제각기 다른 코다들과 대화를 나누며 황씨는 확신을 얻었다고 했다. “각각이 다르면서도 음성언어 중심의 사회에서 코다와 농부모들이 겪는 문제에는 유사점이 있었어요.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가 우리 사회에 공고히 버티고 있다는 뜻이겠죠.”
코다의 부모는 누구인가
11일 서울 성북구 한 카페에서 황지성 연구자(43)가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전지현 기자
황씨는 11명의 코다들에게서 그들의 부모 22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농부모들은 나이대가 다양했지만 직업이 비슷했다. ‘미싱, 목공, 청소노동, 건설일용노동, 식모, 세신사, 방문판매’ 등 저임금 육체노동직에 종사한 이들이 대다수였다. 이례적으로 대학에 들어가 외국 유학까지 한 50대 농인 여성만이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할당하는 기업에 취직해 사무직 일을 하고 있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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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2000년대생’ 면접해보니 자식이 통역 등 사회와 가교 역할
“수업 때 폰 제출 않고 감추기도”
수어통역사 1인이 300명 담당꼴 청인 자녀가 복지 대책 돼선 안 돼
여성학·장애학 연구자 황지성씨(43)는 올해 11명의 성인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를 만났다. 코다는 농인 부모의 자녀를 일컫는 말로, 황씨 또한 농인 아버지를 둔 코다 당사자다. “청각장애인들은 역사 속에 계속 있어왔고, 그 자녀들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코다라는 이름과 정체성은 최근에야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황씨가 말했다.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코다’가 차츰 알려졌지만 황씨는 미디어가 개별적인 사례를 소개하는 것에 그친다는 아쉬움을 느꼈다. 한국 사회에서 농인의 자녀로서 코다들이 겪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짚어보자는 문제의식으로 황씨와 비영리단체 코다코리아(대표 이길보라)는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1930~1970년대생 농인 부모를 둔 1960~2000년대생 성인 코다 11명이 집단·심층 면접에 참여했다. 언어나 문화 등으로 이중고를 겪는 이주노동자·결혼이민 농인 부모를 둔 코다도 2명 포함됐다. 코다코리아는 12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그 결과발표회를 열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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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생활] 코다코리아, 코다(CODA)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발표회 개최
코다코리아(대표 이길보라)가 농인의 자녀인 코다에 대한 실태를 담은 연구조사 결과발표회를 개최한다. 코다 실태조사 결과보고회는 2023년 9월 12일 노무현시민센터 1층 다모여 강의실에서 진행된다.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는 농인의 자녀를 일컫는 용어다. 코다코리아는 고요와 소리의 세계를 잇는 한국 코다의 모임으로, 코다의 고유한 유산과 다문화 정체성을 축복하며 코다를 연결함으로써 가능성을 확장하는 비영리 스타트업이다.
코다 실태조사는 한국 사회에 코다가 거의 인식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코다의 정의, 정체성과 범주, 그들이 처한 현실, 코다의 존재와 목소리가 어떤 사회 변화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실시한 실태조사다. 코다는 장애인, 아동청소년, 돌봄 등 관련 제도나 법, 정책은 물론이고 사회운동과 학계 등에서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농인/장애인의 자녀이면서 ‘장애인’ 당사자는 아니며, 장애가 있는 가족 구성원에게 주되게 돌봄을 제공하는 위치지만 온전히 ‘돌봄제공자'라고는 할 수 없는, 모호함으로 가득한 범주인 코다에 대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이번 실태조사가 진행됐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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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생활] 코다코리아, 아시아 최초 코다국제컨퍼런스 성료
코다코리아(대표 이길보라)와 코다인터내셔널이 주최한 ‘2023 코다국제컨퍼런스’가 지난 6월 29일부터 7월 2일까지 전 세계 22개국 151면의 코다들이 참가한 가운데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코다국제컨퍼런스는 미국의 비영리 단체인 코다인터내셔널이 매년 주최하는 컨퍼런스로 농인의 자녀인 코다들이 모여 코다 정체성과 문화적 유산을 축하하고, 사회적 차별 해소를 탐구하는 등 코다 인권 증진을 도모하는 행사이며, 아시아에서는 한국에서 최초로 개최했다.
이번 코다국제컨퍼런스는 △코다, 농인, 수어와 관련된 강연 △코다 정체성을 논의하는 워크숍 △교류 모임 △장학금 모금 경매 △레크리에이션 △한국 농사회 탐방 등으로 이루어졌다.
‘다채로운 코다 Colorful CODA’는 2023 코다국제컨퍼런스의 주제로, 코다라는 공통점 안에서도 인종, 민족/국적,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 장애 등에 따라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게 되는 코다들을 의미한다. 또한 여러 국가의 코다들이 모여 다채로운 코다의 문화, 코다가 지니고 있는 수어와 농문화까지 모두 모여 아름다운 물결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코다코리아 이길보라 대표는 “전 세계에서 모인 코다들의 경험과 언어, 문화 및 생활 양식이 이토록 비슷할 수 있다는 점에 다시 한번 놀랐다."고 말하며 유색 인종이 처음으로 개막 기조연설을 하고 아시아인 코다 좌담회가 최초로 열렸던 의미 있었던 컨퍼런스였다고 밝혔다.
한편 코다코리아는 컨퍼런스 종료 이후에도 코다의 존재와 정체성을 알리는 강연, 인식개선 교육, 코다 모임, 코다 캠프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국내 코다 커뮤니티를 지속 및 확장하며 코다와 농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 행사는 주한미국대사관⋅한국관광공사⋅인천관광공사⋅브라이언 임팩트⋅아름다운 가게 등의 후원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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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마이너]
[조선일보 더나은미래]
[미디어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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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지 메이커즈] “괜찮아, 경험이야!” 길 위에서 인생을 찾다, 이길보라 코다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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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04. 17. 비마이너(복건우 기자)
함께 살기 위해, 지하철 탄 ‘행동’에 주목하다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장애인권리예산 투쟁 1년: 지하철행동과 시민과 언론의 역할’ 좌담회에 참여한 발제자와 패널들이 관객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복건우
장애인들이 휠체어에서 내려와 바닥을 기어 열차에 오른다. 출근길 시민들은 불편을 호소한다. 앞서 수십 년간 장애인들은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권리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소수자와 약자, 몫이 없는 이들의 목소리에 응답하지 않는 시대, 시민사회와 언론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할까.
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가 공동 주관한 ‘장애인권리예산 투쟁 1년: 지하철행동과 시민과 언론의 역할’ 좌담회가 14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렸다. 이번 좌담회에서는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지하철행동의 의미와 전망’에 대해 발제를 하고, 안영춘 한겨레신문 기자가 ‘지하철행동 보도 행태에 나타난 저널리즘의 한계와 역할’에 대해 발표했다. 이어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을 좌장으로 이길보라 영화감독,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김재왕 서울대 공익법률센터 변호사, 나경희 시사IN 기자가 문화예술계·학계·법조계·언론계 토론 패널로 참석해 이야기를 나눴다.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장애인권리예산 투쟁 1년: 지하철행동과 시민과 언론의 역할’ 좌담회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지하철행동의 의미와 전망’을 주제로 발제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위한 투쟁”
지하철에서 장애인들은 속수무책으로 다치고 죽어 나갔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역사에서 리프트를 타다 떨어졌고, 리프트 버튼을 누르려다 계단 아래로 추락했다. 어떤 리프트인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2001년 오이도역 참사는 수직형 리프트, 2002년 발산역 참사는 경사형 리프트였다. 장애인들은 지하철 리프트를 ‘살인 기계’라고 불렀다. 이 살인 기계를 없애고 이동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2021년 12월 3일, 출근길 지하철이 멈춰 서자 세상은 뒤늦게 장애인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자그마치 20년이 넘는 세월을 견디며 ‘살아남은’ 결과다.
출근길에 지하철을 멈춰 세우는 승하차 시위, 승강장에서 장애인 권리를 알리는 선전전을 합쳐 전장연은 ‘지하철행동’이라고 부른다. 이날 발제를 맡은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20년 넘게 이어져 온 투쟁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위한 투쟁이었습니다. 차별받던 사람이 저항하는 사람으로 변화하는 투쟁이었습니다. 혐오와 욕설이 쏟아지고 있지만, 장애인의 권리는 정치가 예산을 통해 책임져야 하는 문제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선은 확대되었다. ‘이동권 투쟁’은 모든 권리 투쟁의 시작이었다. 이동할 수 있어야 교육받고 노동하며 지역사회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중증장애인은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기 위한 활동지원서비스 제도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2006년 4월 27일, 6시간 동안 한강대교를 맨몸으로 기어가는 투쟁을 벌였다. 처절한 싸움 끝에 활동지원서비스는 법에 명시된 ‘권리’가 되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예산을 바라보는 정부 부처의 태도다. 장애인 권리는 그동안 ‘불필요한 비용’ 정도로 여겨져 왔다. 박 대표는 과거 독일 나치가 장애인 학살을 자행한 ‘T4 프로그램’에 빗대어 이를 설명했다.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장애인, 노인, 아동에게 필요한 예산을 다 들어줬다가는 ‘나라가 망한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싸울 힘이 없다면 살 권리도 없다.’ 장애인 30만 명을 생체 실험한 가스로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한 히틀러의 말입니다. 중증장애인에게 들어가는 활동지원 예산이 과도하니 이들을 시설에 보내야 한다는 기획재정부의 논리가 T4 프로그램과 무엇이 다릅니까. 우리는 기획재정부를 ‘한국판 T4 본부’라고 부릅니다.”
박 대표는 지하철행동이 비장애인 중심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47번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 177명의 삭발 투쟁, 325번의 출근길 선전전(4월 17일 기준)을 통해 전장연은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 바라보는 변화의 길을 열었다. “우리를 배제하는 출근길은 비장애인만을 위한 길이었습니다. 노동력을 실어나르는 컨베이어벨트 같은 출근길 지하철에 우리가 기어들어가니 세상은 놀랐습니다. 이제까지 장애인이 어떻게 살고 죽었는지, 우리의 역사는 서서히 잊혀져 갔습니다. 그러나 매일 아침 단 한 명이라도 장애인이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함께 살아가기 위한 권리예산을 승강장에서 외칠 힘이 있다면, 우리의 투쟁은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 사실 왜곡, 악의적 프레이밍, 클리셰 끼워넣기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안영춘 한겨레신문 기자는 ‘언론은 왜 달을 보지 않는가’라는 제목으로 지하철행동 보도 행태에서 나타난 저널리즘의 한계와 역할을 짚었다.
과거 어느 때보다 장애 이슈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뜨거웠다. 전장연이 빅카인즈와 자체 데이터를 활용해 뉴스 키워드를 분석한 결과, 2021년 12월 3일부터 2023년 3월 26일까지 언론에 보도된 지하철행동 기사는 총 6,032건이었다. 전장연이 출근길에 지하철을 타면, 정치권 전체에서 반응이 쏟아졌다. 2022년 3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페이스북에 “서울 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라는 글을 올려 전장연을 공격했다. 2023년 1월 오세훈 서울시장은 ‘무관용 원칙’을 내세워 전장연이 시위 중인 역사를 무정차 통과했다. 정치권이 반응할 때마다 기사량은 가파르게 증가했다. 이러한 지하철행동의 ‘화제성’에 언론은 주목했다.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장애인권리예산 투쟁 1년: 지하철행동과 시민과 언론의 역할’ 좌담회에서 안영춘 한겨레신문 기자가 ‘언론은 왜 ‘달’을 보지 않는가’라는 주제로 발제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단순 보도량은 물론, ‘맥락적 보도’도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다. 전장연이 왜 투쟁하는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는 왜곡된 보도는 없는지 살펴보는 식이다. 안 기자는 지하철행동의 화제성이 이러한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면서도, 맥락이 빠진 보도가 도드라져 보이는 미디어 환경을 경계했다. “화제만을 좇는 탈(脫)맥락적 보도가 일정량을 넘어 역치를 돌파하면 해당 이슈는 레드오션이 됩니다. 차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블루오션, 즉 맥락적 보도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같은 미디어 안에서도 탈맥락적 보도와 맥락적 보도 사이를 맥락 없이 오락가락하는 행태를 보이는 것입니다.”
안 기자는 세 가지 측면에서 언론 보도 행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첫째, 사실을 교묘히 짜깁기해 서사를 재구성하는 왜곡 보도. 둘째, 사실을 취사선택하거나 제목을 통해 독자를 자극하는 악의적 프레이밍. 셋째, ‘시민 불편’을 강조하며 혐오를 조장하는 극단적 클리셰. ‘바퀴를 일부러 승강장 틈에 끼워 넣었다’, ‘할머니 임종을 가야 하는 사람에게 버스 타고 가라고 했다’ 같은 보도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보도가 한 번 진실로 둔갑하고 나면 끝없이 재인용되고, 이를 바로잡으려면 설명이 길어지는 탓에 왜곡하기보다 훨씬 큰 노력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두 보도는 서울교통공사가 발표한 왜곡된 보도자료를 확인 과정 없이 베껴 썼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저널리즘이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한 겁니다.”
그렇다면 언론의 자유를 누릴 자격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안 기자는 그 자격이 ‘사회적 약자’가 아닌 ‘언론’ 자신에게 있다고 봤다. 입법, 행정, 사법에 이어 ‘제4의 권력’이라고 불리는 언론이 기득권을 비판하기보다는 오히려 카르텔의 일원이 되어 사회적 약자를 외면하고 강자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것이다.
“주류 미디어는 애초부터 강자의 일원이니 그들에게 ‘약자의 목소리를 전달해 주십시오’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가 곧 저널리즘적 약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여기에 있습니다. 장애인운동과 저널리즘이 존재론적으로 불화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또한, 주류 미디어 종사자 대다수는 엘리트 계급에 속해 중간계급의 이익을 보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보적이라고 불리는 일부 언론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안 기자의 말이다.
우리나라 언론이 받아든 신뢰도 성적표는 처참한 수준이다.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언론 신뢰도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2017년부터 2020년까지 4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했다. 2021년에는 46개국 중 40위에 그쳤다. ‘기레기(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를 넘어 ‘기더기(기자와 구더기의 합성어)’가 기자라는 직업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언론은 불신받는 집단으로 전락했다.
안 기자는 기성 언론이 그 효력을 다해가고 있다며, 기존 저널리즘 문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기자들을 장애계가 적극적으로 조직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또 기성 언론을 견인하는 비마이너와 같은 당사자 독립언론의 역할에 주목했다. “기성 언론은 모든 투쟁을 결과 위주로 바라보고 보도합니다. 기성 언론을 낙후시킬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비마이너는 기성 언론 기자들이 지하철행동과 전장연과 관련된 사안을 보도하기에 앞서 서울시나 서울교통공사의 보도자료를 검증하기 위해 참조하는 언론이 됐습니다. 비마이너 같은 매체가 확실한 위상을 가져야 합니다.”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장애인권리예산 투쟁 1년: 지하철행동과 시민과 언론의 역할’ 좌담회에서 이길보라 영화감독(왼쪽부터),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김재왕 서울대 공익법률센터 변호사가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 “청각장애인, 지하철행동 접할 기회 없다”
발제가 끝나고 난 뒤 패널 네 명의 토론이 펼쳐졌다. 이길보라 감독은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 자녀) 정체성을 기반으로 지하철행동이 청각장애인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설명했다. “청각장애인은 이 투쟁을 자신의 언어인 수화언어, 문자언어로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몇몇 정치인이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 이 사안을 악용하고, 언론은 탈맥락적 보도를 하고, 시민들은 단편적으로 사건을 이해하는 상황에서 투쟁의 당사자이자 권리 주체가 되어야 할 청각장애인은 이 운동이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한 것이라는 맥락을 잃어버립니다.”
예를 들어 2022년 4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출연한 JTBC ‘썰전’ 유튜브 영상에는 수어·문자통역이 제공되지 않았다. 비마이너는 당시 통역이 제공되지 않은 방송 환경을 지적하며 농인의 정보접근권과 언어권 보장을 위해 녹취록 전문을 기사로 공개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에게는 가닿을 수 없었다고 이길보라 감독은 지적했다. “한국농아인협회가 제작하는 ‘한국농아방송’에는 전장연 투쟁과 관련한 콘텐츠가 전무합니다. 문자언어를 제대로 읽을 수 없는 수어 사용자가 농인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접근하는 채널조차 장애인권리예산을 제대로 보도하거나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안을 정확하게 보지 못하게 함과 동시에 누구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강화하지 못한 언론의 책임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어 이길보라 감독은 제작 중인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의 몸(Our Bodies)’에 나오는 일본의 ‘우생보호법’ 투쟁이 한국의 상황과 연결된다며, 지하철행동을 새로운 시각으로 읽어내는 예술적 시도를 강조했다. “인구 증가를 막겠다며 8만 명 넘게 강제 임신중절·불임수술을 받도록 한 일본의 우생보호법은 곧 장애인을 향한 차별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지금 여기, 한국 사회에도 낯설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전장연의 투쟁이 단순하게 ‘휠체어 탄 장애인들이 지하철 타고 싶대’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비장애인 중심 사회를 공고하게 떠받치고 있는 가치관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임을 예술로 새롭게 감각하게 하는 극영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등의 시도가 필요합니다.”
김승섭 교수는 이동, 낙인, 정치, 합리성이라는 네 가지 키워드로 지하철행동을 설명했다. 시민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기본 조건이 되는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 이동을 막는 물리적 장벽이 사라지더라도 장애인을 향한 혐오와 낙인이 결과적으로 이동을 가로막는 현실의 부당함을 이야기했다. “휠체어 사용자인 제 친구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저상버스를 이용한 적이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저상버스를 타려고 시도한 적이 없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수십 년간 낙인을 감당하며 장애인으로 살아온 그가 저상버스를 두려워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이러한 혐오와 낙인에 대해 정치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김승섭 교수는 한국의 정치가 장애인의 투쟁을 방관한 것이 아니라,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키우기 위해 투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고 봤다. “일각에서는 장애인들이 ‘생떼를 쓴다, 억지를 부린다’라고 주장합니다. 그 투쟁의 내용과 요구 방식이 모두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어떤 이들은 자신이 살아온 고된 역사와 몸 깊숙이 새겨진 상처 말고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공동체가 누적된 차별의 역사를 지우고 피해자이자 생존자인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부과할 때, 당사자는 자신의 삶을 설명할 언어와 기회를 빼앗깁니다. 그러한 조건 위에서 합리성과 억지를 구분하는 ‘합리적인’ 기준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 ‘전략적 봉쇄소송’ 그리고 ‘실패한 취재기’
김재왕 변호사는 서울교통공사가 전장연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전장연이 2021년 12월부터 1년간 75차례 지하철 시위를 벌여 운행 지연 등 피해를 봤다며 전장연에 6억 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김재왕 변호사는 이 소송을 “시민 참여와 비판을 봉쇄하려는 일종의 전략적 봉쇄소송”이라고 규정하면서 “소 제기만으로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장애인권리예산과 같이 정치적 공론장에서 논의되어야 할 주제를 법정 내 손해배상 문제로 왜곡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전략적 봉쇄소송은 보통 민사소송으로 제기된다. 문제는 재판에서 승소하고 손해배상을 받으려는 목적이 아니라, 해당 사안을 둘러싼 정치적 논의를 차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이다. “서울교통공사는 소송 조정 과정에서 지하철행동 중단을 요구했는데, 이는 서울교통공사의 소 제기 목적이 손해배상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전략적 봉쇄소송은 비판자와 반대자에게 공포감을 주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정치 참여 자체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장애인권리예산 투쟁 1년: 지하철행동과 시민과 언론의 역할’ 좌담회에서 나경희 시사IN 기자가 ‘실패한 취재기’라는 주제로 전장연에 관해 쓴 기사들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마지막으로 나경희 기자는 ‘실패한 취재기’라는 주제로 전장연에 관해 쓴 기사들을 소개했다. 1년 365일 중 하루만 취재해서 발행한 기사, 나머지 364일의 싸움을 담지 못한 기사, 현장에 사람이 남아있어도 일정상 떠나야만 했던 기사. 나경희 기자는 그 과정에서 누구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이준석 전 대표, 오세훈 시장의 말은 취재가 쉬워요. 페이스북에 다 올려주시고, 보도자료도 뽑아주시고, 전화도 대신 받아주시니, 귀에 쏙쏙 박히는 말을 따옴표 안에 집어넣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기자는 현장의 정제되지 않은 말, 한참 들어야지 알 수 있는 말을 알기 쉽게 잘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22년 3월 28일 오전 8시, 서울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승강장을 찾은 나경희 기자는 시민들 앞에 무릎을 꿇은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을 마주했다.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않는 정치권을 대표한 사과였다. 이틀 뒤 김예지 의원을 인터뷰하며 ‘일반 명함’을 건넸다. 시각장애가 있는 김예지 의원은 점자가 만져지지 않는 명함에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동안 만난 취재원 중 점자 명함이 필요한 시각장애인이 없었거나, 있더라도 고려하지 못했다는 방증이었다. “인터뷰를 하고 난 뒤 우리가 시민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게 맞나,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는 돌아와서 편집국에 건의했고, 시사IN 명함에는 오톨도톨한 점자가 새겨졌다.
기자가 현장을 떠나는 속도보다 독자가 기사를 떠나는 속도는 어쩌면 더 빠를지 모른다. ‘기승전결’ 없이 사건 발생 단계인 ‘기’만 반복하는 기사가 차고 넘친다. 나경희 기자는 어떻게 하면 독자에게 전장연 투쟁의 역사를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고 했다. “꼭 큰 소리가 나고 사건이 벌어져야 기사를 쓰는 게 아니라, 당장 내일이라도 쓸 수 있다면 어떻게 써야 할지 생각을 많이 해요. 매일 똑같고 지겨운 자기반성일지라도 안 하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요. 언론에 많은 기대를 하지 않게 되더라도, 열심히 쓰겠습니다.”
패널들에게 던진 질문이 돌고 돌아 다시 좌장에게 돌아왔다. 고병권 연구원은 지하철행동의 의미를 이렇게 풀이했다. “출근길에 함께 지하철을 타는 것은 시민들에게 말을 건네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퍼포먼스가 아니라 정말 지하철을 탈 거라고, 시설에서 나올 거라고, 그러니 이 사회 전체의 리듬을 조정하자고 요구하면서 같이 세상을 바꿔보자는 것입니다. 과거 해외 정신장애계에서 탈시설을 외쳤던 반정신의학그룹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나 자신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과 함께 사는 것’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서로 맞춰 나가야 합니다. 국가에 대한 요구와 별개로, 우리 시민에겐 그런 책무가 있습니다.”
2023. 02. 02 미디어생활
세 번째 한국수어의 날을 맞이하여
매년 2월 3일은 한국수화언어법에서 정한 한국수어의 날이다. 농인과 한국수어 사용자의 한국수어 사용 권리를 신장하고 한국수어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고취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날이다.
코다는 농인의 ‘자녀’이므로 한국수어의 날과 별 상관없이 보일 수 있지만, ‘농인’의 자녀이기에 코다에게도 특별한 날이다.
수어는 코다가 태어나서 첫 번째로 접하는 언어이자, 가장 먼저 만나는 사회인 가정의 주 언어다. 부모님이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이라면 특별히 교육기관에서 수어를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수어와 농문화를 체득하게 된다. 코다는 수어를 제1언어로 하는 농문화를 경험하고 나서 음성언어 중심의 청문화를 경험한다. 개인적으로는 다수의 문화보다 소수의 문화를 먼저 받아들인 것이 세상을 사려 깊고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었다.
어른이 된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은 학교에서 국어·외국어를 배우듯이 수어를 배웠다면 수어를 사용하는 것이 특별한 소수의 경험이 아니라, 보편적인 문화였을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수화언어법」제정에 따라 한국수어는 한국어와 공식적으로 동등한 위상과 자격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 한국어와 한국수어가 동등한 위치에 자리했는지 의문이 든다.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된 후 이제 7년이 지났으나 아직도 수어가 나라별로 다르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거나, 수어를 언어가 아닌 단순한 제스처쯤으로 생각하는 청인들도 많다. 의무교육기관에서 수어를 가르치지 않는데 한국어와 동등하게 위치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 사회의 수어·농교육 현실, 더 나아가 코다교육에 대해 고민하던 중, 지난해 서울시 청년허브의 청년의제별네트워크 지원 사업을 통해 코다코리아와 농인단체인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 수어민들레, 한국농대학생연합회, 한국농아동교육연구소가 함께 농교육의 변화를 꿈꾸는 <아, 파> 네트워크를 결성하여 농교육 변화의 필요성을 알리는 세미나를 여러 차례 진행했고, 모두를 위한 교육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는 <모-두를 위한 교육 : 수어로 교육 받을 권리>라는 공론장을 열었다. 음성언어가 주가 되어 수어로 통역하는 것이 흔한 경우라면, <아, 파> 네트워크의 세미나와 공론장은 수어를 메인으로 삼아 청인들에게 음성 통역을 제공하여 다른 행사와 차별점을 두었다.
공론장에서는 농인, 코다, 청인 할 것 없이 모든 참가자들이 동그랗게 모여 자신이 생각하는 ‘모두를 위한 교육’이 무엇인지, 농교육과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는지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한 참가자는 다양한 언어가 평등하게 존중받아야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모두를 위한 교육이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을 나누었다.
나는 이 의견에 크게 공감했다. 언어가 평등하게 존중받기 위해서는 교육기관에서 수어로·수어를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 수어 교육이 비단 농인과 코다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다문화적인 관점에서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모두를 위한 교육의 방법일 것이다.
세 번째 한국수어의 날을 맞아 한국 사회에 수어가 음성언어의 보조가 아닌 독립적인 언어로서 자리 잡기를 바란다. 한국수어의 날이 농인, 코다에게만 특별한 날이 아니라 청인에게도 자연스럽고 특별한 날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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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생활] “코다는 두 개의 언어를 구사하고 두 개의 문화를 잇는 존재”_장현정 코다코리아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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